역사컬럼 [History Column]

한반도에 삼국지 관우의 사당이 생긴 이유

expressionism 2019. 1. 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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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삼국지 관우의 사당이 생긴 이유.




나관중의 <삼국지> 덕분에 중국 위ㆍ촉ㆍ오 삼국시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관우는 중국인들에게 전투의 신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추앙받았는데요.

그러다보니 중국에서는 관왕묘를 설치하여 관우의 영정이나 모형을 안치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에 임하는 장군들이 관왕묘를 설치하고 참배를 올렸으나, 점차 일반 백성들도 관우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우의 사당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숭례문 밖의 남관왕묘, 흥인지문 밖의 동관왕묘, 그 외에도 성주, 강진, 안동, 남원 지역에도 설치되어 있는데요.

중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에 관왕묘가 왜 생기게 된 것일까요?



관왕묘가 한반도에 처음 생기게 된 이유는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은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그해 12월, 명군이 조선을 원조하러 출병하게 됩니다.

‘조공국을 구원한다’는 구실로 출병하였으나, 실제 목적은 ‘순망치한’, 즉, 조선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하면 그 다음은 명이 공격당할 것을 걱정한 것이 출병의 실제 이유였는데요



아무튼 이렇게 조선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은 자신의 거처에 작은 관왕묘를 설치합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혼이 자신들의 전투를 도와 승리로 이끌어준다고 믿었고, 이를 통해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했거든요.

1598년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명나라 장수 진유격은 관왕묘를 넓은 곳에 크게 건립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도우러 온 명나라 장수의 청이니 거절하기 어려웠는데요.

왕실에서는 건축 비용을 보조했고, 도감관이라는 관리까지 두어 관왕묘 건립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관왕묘가 숭례문 밖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조는 직접 관왕묘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기까지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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