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컬럼 [History Column]

100년전의 2월 28일 그 날!

expressionism 2019. 3. 1.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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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2월 28일 그 날!


올 해 2019년은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3.1 운동 하루 전날인 100년 전 2월 28일로 돌아가볼까 하는데요.
1919년 2.8 독립선언에 힘을 얻어 한반도에서도 만세 시위를 준비합니다.
선언서의 작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요.
기미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3주 간 지인의 집 방 한 칸을 빌려서 작성했고, 대략 2월 25일에서 26일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 3월 1일까지 선언서를 제작하는 일이 남았는데요.
최남선은 <신문관>이란 인쇄소에서 아예 기미독립선언서의 활판을 제작하여 최린에게 넘겨주었고, 최린은 천도교가 소유하고 있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2월 27일 하루 저녁, 4시간 만에 2만1천 매를 인쇄합니다.


이제 선언서를 배포해야했는데요.
중요한 일인 만큼, 사람들이 직접 들고 기차를 타고 전국 주요도시로 움직입니다.
주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의 조직을 활용하여 배포하였고, 서울의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배포책임이 맡겨졌습니다.
학생들은 2월 28일 밤 10시, 정동제일교회에 소집되었고, 한 사람 당 수백 장씩 나눠받았습니다.
지침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인 3월 1일 오후 2시에 일제히 살포할 것, 그리고 개개인이 어느 장소에서 살포해야 하는지 지역까지 정해서 나눠줍니다.


이 숨죽이는 기밀작전은, 사실 사전에 발각될 뻔합니다.
2월 27일, 보성사 인쇄소에 친일 경찰이었던 신철 형사가 들이닥쳤거든요.
그 입막음을 위해 인쇄소 사장 이종일은 손병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여 5천원을 얻어와서 그의 손에 쥐어주고 위기를 넘깁니다.
당시 돈 5천원은 지금의 1억 원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 후로 두 달 뒤, 신철은 잡혔고, 그 다음 날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의 위태롭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지나, 100년 뒤인 오늘, 우리는 자유로이, 목청껏 만세 삼창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 땅과 우리를 지켜내신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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